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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평화 메신저 연평도
한반도 평화 메신저 연평도
  • 배석환
  • 승인 2019.07.2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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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5도 최고의 황금어장, 하지만…

분단의 슬픔이 빚어낸 아픔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섬 연평도.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던 포탄의 흔적들은 사라졌지만 상처를 치유하기엔 아직 이른 시간. 그날의 기억이 때때로 폭풍처럼 다가와 연평도를 휘감고 바다를 긴장하게 만든다. 이제 반백년 잠들었던 연평도 등대가 다시 불을 밝히고, 화려했던 연평도 조기파시의 영광을 재현하려 한다.

지리적 위치로 보면 북한과 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이 있다.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백령도, 대청도, 연평도 등 5개 섬이 그러하다. 우리는 이들 섬을 ‘서해 5도’라 부른다. 연평도는 서해 5도 섬들 중 가장 최근까지 분단의 비극이 실제로 일어났던 비운의 섬이다. 누구도 일어날 것을 예상하지 못했던 북한의 민간인 포격으로 섬은 화염에 휩싸였고,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의 목숨이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다. 연평도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끊어졌고, 북한과의 적대적 관계 때문에 황금어장에서의 조업도 제약을 받는 이중고를 겪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판문점을 넘어 66년 만에 북한 땅을 밟은 지금, 평화의 상징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연평도는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뱃길로 2시간 남짓 걸린다. 물론 날씨가 허락해야 한다. 겨울은 바람 때문에 파고가 높아 들어가기 힘들고 여름에는 짙은 안개가 불청객이다. 그래서 대부분 봄과 가을에 연평도를 비롯해 서해 5도를 많이 찾는다. 여객선은 당섬선착장에서 타고 내려야 한다. 본섬과는 1km정도 거리가 있다. 하루 한 번 정기선이 있기 때문에 들어오면 숙박을 해야 한다. 그래서 선착장에는 숙박업소들 차량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대부분의 가옥들은 북한을 등진 곳에 위치해 있다. 북한이 바로 보이는 곳에는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다. 포격사건이 있던 이후로 많은 이들이 뭍으로 떠났기 때문에 빈 가옥들이 즐비한 을씨년스러운 마을 풍경을 예상했지만, 섬마을의 풍경은 너무도 활기차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군부대가 섬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허락되지 않은 길을 걷는다면 철책에 가로막혀 되돌아올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약 12km 정도 조성된 둘레길을 따라 섬을 둘러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섬을 마주 보고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망향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동진정’이라는 작은 정자에 올라 섬을 조망한다. 바닷물이 물러난 연평도 앞바다에는 갯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조개를 채취하는 주민들이 간혹 보일 뿐 갯벌의 주인공은 백로들이다. 물에 잠겨 보이지 않던 작은 바위 섬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억겁의 시간이 만들어 놓은 길이 연결된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작은 생명들이 웅덩이에 갇혀 탈출구를 찾아 이리저리 움직인다. 바위 섬들은 저마다 이름을 가지고 있다. 가장 큰 섬인 ‘책섬’은 삼형제 바위라 부른다. 연도교로 이어져 있어 언제든지 드나들 수 있지만 군사시설인지 막혀 있다. 그 다음이 ‘작은지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큰지리’가 있다. 큰지리에는 최근에 만들어진 것 같은 굴 채묘장이 보인다.

길은 산비탈로 이어져 있다. 해안길은 단단한 철책으로 막혀 있다. 평탄한 길이 끝나고 계단을 한참 오르니 망향비가 나온다. 피난민들이 고향을 그리며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곳이 북한 강령군과 해주시, 그리고 연안군이다. 북한과 연평도 사이에 작은 이름 모를 작은 섬이 하나 보이는데 중국 어선들이 조업을 하고 있다. 북방한계선(NLL)이기 때문에 저들이 우리네 바다에서 잡아가는 것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 망향비 밑으로 해안 철책 너머엔 ‘아이스크림바위’와 ‘거북바위’가 있지만 역시나 그저 바라만 볼 수 있다.

‘구리동해변’까지는 일반적인 둘레길이 아닌 군사작전을 위해 만들어 놓은 도로를 따라 걷게 된다. 섬을 가로지르는 5km 구간은 시야가 막혀 있고, 사방이 군부대라 걷는 재미가 반감된다. 위장막으로 덮여 있는 여러 초소 가운데 포격 당시 휴가를 포기하고 중대로 복귀하던 중 전사한 故 서정우 하사를 기리는 소나무 한 그루가 만들어준 그늘에서 잠시 발길을 멈춘다.

해변은 일몰 이후 출입이 통제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여느 해변과 마찬가지로 고운 모래와 몽돌이 가득하다. 여름이면 군인 가족들이 피서를 즐기는 휴양지 역할을 하고 있다. 해변에서 언덕을 하나 넘으면 연평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몰을 선사하는 ‘가래칠기해변’이 나온다. 해변이라기보다는 깎인 절벽 바위가 일품인 절경이다.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긴 하지만 해가 지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전망대가 있는 ‘조기역사관’으로 발길을 재촉한다.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는 형국이라 기대했던 일몰은 아니지만 구름을 뚫고 빛을 발하는 강렬함이 오히려 더 인상적이다. 역사관으로 가는 길 중간에는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연평해전을 승리로 이끌고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한 곳이다. 공원에서 바다를 향해 시선을 돌리면 언덕 위에 2층 건물이 보이는데, 조기역사관이다. 장소와 이름이 다소 어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역사관 1층에는 여러 사료들을 전시해 두었다. 지금은 연평도를 대표하는 어종이 꽃게지만 과거에는 조기였다고 한다. 조선 16대 인조대왕 14년 임경업 장군에 의해 연평도 조기가 알려졌고, 매년 4월 하순경 수많은 조기떼가 알을 낳기 위해 북상해 연평 앞바다를 가득 채웠다고 한다. 때문에 1968년까지 조기파시가 만들어졌으며, 조기잡이 철이 되면 전국에서 모여든 어선 수만 3,000여 척이 넘었다는 기록이 있다. 선원뿐 아니라 상인들까지 연평도로 모여들면서 그 당시 인구가 5만여 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황금어장으로 불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많던 조기가 좀처럼 보기 힘든 어종이 되어버렸다.

천년만년 가는 부귀영화란 없다고 하지만 너무도 변해버린 연평도의 사연을 곱씹으며 일몰을 바라본다. 파도를 맞으며 병풍처럼 연평도를 감싸고 있는 절벽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다. 역사관 앞마당 잔디 위에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백건우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고 있는 모습의 조형물이 놓여 있다. 연평도 포격사건의 아픔을 같이하기 위해 연평도를 찾아 직접 연주회를 개최한 마음에 답하고자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어둠이 연평도를 덮으려 할 때 어디선가 밝은 빛 한줄기가 바다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등대다. 역사관 뒤로 100여 미터 정도 오르면 등대 하나가 나온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등대지만 연평도 주민들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이 등대는 조기파시로 인해 어선들이 연평해역으로 몰려들자 이들의 안전한 조업을 위해 1960년 불빛을 밝혔다. 하지만 남북 군사대치로 북한군의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1974년 소등했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5월 17일, 45년 만에 등대는 긴 잠에서 깨어나 다시 불을 밝히게 되었다. 물론 군사적으로 여전히 대치상태에 있기에 불빛이 나가는 방향은 남쪽으로 제한적이다.

살아있는 안보교육장

연평도는 다른 서해 5도 섬들과 비교하면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볼거리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날 둘레길을 따라 섬을 한 바퀴 돌았더니 발길이 향할 곳을 잃어버렸다. 꽃게 금어기가 오기 전에 마지막 조업을 떠나는 어선들은 이미 새벽에 출발해 선착장이 너무도 한산하다. 군인들의 아침 구보 소리만 요란한 섬 골목은 강아지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여름 더위를 식혀 주는 상쾌한 아침 바람을 따라 ‘충민사’에 올랐다. 나라를 지키는 이들을 기리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조기파시를 생기게 한 임경업 장군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다.

처음 도착했던 당섬선착장 방향으로 걸어본다. 연평해전 승리를 기리는 전승비를 지나니 조업에 필요한 어구들이 선착장 한 곳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한쪽에서는 조업에 나서기 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고, 막 조업을 끝내고 돌아온 어선은 그리 많은 양은 아니지만 조기를 선별하고 있다. 아쉽게도 꽃게 어선은 보이지 않는다. 연평도에서 어획되는 꽃게는 옹진군수협에서 거래되는 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찾는 이들이 많지만 생산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언제나 비싸다. 연평도와 인천항까지 거리가 멀기 때문에 어획한 꽃게만을 전문적으로 운반하는 어선이 따로 있다. 보통 새벽에 조업을 나가면 오후 2시쯤 운반선에 꽃게를 옮기고 당섬선착장에 들어온다고 한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마지막 작은 섬 모이도 너머로 소연평도가 보인다. 다시 마을로 발길을 돌린다. 마을 골목은 대부분 신식 건물로 다시 지어지면서 옛 골목 모습을 찾기 힘들다. 오래된 벽화 그림도 어딘가 모르게 섬에 녹아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디선가 초등학생들의 등교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를 뒤따르다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멈춰 섰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진 지붕이며, 구멍이 뚫린 가스통까지. 전쟁으로 인한 비극이 눈물로 씻겨 내려가지 못하고 그대로 그 당시의 시간과 함께 굳어있었다.

‘안보교육장’이라 쓰여 있는 간판을 조심스레 지나쳐 민간지역 포격현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2010년 11월 23일 우리 국민 모두는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1차와 2차 두 번에 걸쳐 북한에서 발사한 해안포가 연평도를 집어삼킨 연평도 포격사건은 불과 9년 전에 발생했다. 뉴스 화면에 나오는 영상이 실제가 아니고 누군가 장난을 친 영상이기를 희망했다. 연평도 여기저기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배를 타고 탈출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쟁의 공포가 밀려왔던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다.

연평도는 연평해전이 발발하기 전에는 이름도 생소한 섬이었다. 1999년 제1연평해전이 발생했고, 뒤이어 2002년 제2연평해전이 북한군의 도발로 인해 발생했다. 젊은 군인들의 아까운 목숨이 사라졌고, 온 국민이 분개했다. 그런데 또 다시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했고, 군이 아닌 민간인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북한의 행태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참담함이 밀려왔다.

그때의 처참한 모습 일부를 그대로 보존한 교육장은 지상 2층, 지하 1층으로 만들어져 있다. 지하 1층은 전쟁 발발시 정부의 대응과 국민행동요령 등이 설명되어있다. 지상 1층은 해병대 용사들을 기리는 여러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다. 2층에서는 시간대별로 연평도 포격사건이 어떻게 발발했는지 그리고 우리 군의 대응은 어떠했는지를 모니터를 통해 비교해가며 그날의 긴박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

그리 큰 공간은 아니지만 교육장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무겁다. 마을의 골목이 깨끗하게 정비된 이유가 그날의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일어서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옛것이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했던 마음이 너무도 미안해졌다. 전쟁의 비참함을 간과한 채 평화보다는 적대적 대치를 주장하는 이들의 발걸음이 이곳으로 향한다면, 한반도의 평화로 한 발짝 더 나아가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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