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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밤샘 사투, 오징어 채낚기
파도와 밤샘 사투, 오징어 채낚기
  • 배석환
  • 승인 2019.07.2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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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어등이 불밝힌 동해바다"

한국인의 밥상에 올라오는 수산물 중 대표적인 어종이 오징어다. 바닷바람에 말린 건오징어부터 싱싱한 오징어회까지 어떤 방법으로 먹던 우리네 입맛을 책임져왔다. 7월이면 우리나라 바다는 오징어잡이로 분주해진다. 울릉도 오징어로 대표되는 동해바다는 물론 이거니와 남해와 서해까지 대부분의 바다에서 오징어 채낚기 어선을 볼 수 있다. 특히, 이 시기 동해안 밤바다 수평선엔 환한 집어등을 밝힌 오징어잡이 어선들로 장관을 이룬다. 그 불빛이 얼마나 밝은지 여러 대의 오징어잡이 어선이 선단을 이루며 조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 경쟁 어선일 뿐 홀로 작업을 한다.

강원도 고성군에 대표적인 항구인 고성항을 출발해 2시간이 지났을 무렵 명성호의 시끄러운 엔진소리가 조용해졌다. 그리곤 선장실의 무전기가 바빠진다. 도무지 무슨 소리인지 모를 말들이 오고간다. 먼저 자리를 잡은 다른 어선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라 한다. 아무리 어군 탐지기가 좋아도 모든 바다를 탐지할 수는 없을 터이니 친한 선장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다. 또한 다른 어선들과 일정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데 아무리 치열한 경쟁을 벌이더라고 다른 어선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이 바다위에서 지켜져 내려온 암묵적인 규칙인 것.

그리곤 10여분 후, 명성호 조진석 선장이 조타실 창문으로 손짓을 하자 선미에서 무엇인가 바다로 빨려 들어간다. 물돛이 설치되고 있는 것이다. 오징어잡이 어선은 시동을 정지한 채 조류를 따라 작업을 시작하는데 이때 바람에 떠밀려 어군에서 멀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물돛이다. 이제 모든 것은 바다에 맡겨야 한다.

저 멀리 보이는 설악산 뒤로 해가 지기 시작하고 어둠이 드리워질 때쯤 조용하던 명성호가 다시금 시끄러워 진다. 대낮처럼 환하게 집어등이 켜지고 선미에 위치한 자동 조상기(자동 조획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와 동시에 선원들도 선수에 위치한 각자의 수동롤러 앞에 자리를 잡았다. 다시 해가 뜰 때까지 파도와 싸워야 하는 오징어잡이가 시작된 것이다.

오징어 채낚기 어선은 크기에 따라 일부 차이가 나지만 보통은 수동롤러와 자동 조상기, 그리고 집어등을 갖추고 있다. 예전에는 대낚시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요즘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수동롤러는 오징어의 분포 수심에 따라 선원들의 경험에 의지해 낚시의 수층을 조절하며 자동 조상기는 전동모터를 이용해 자동적으로 낚시를 올렸다, 내렸다하며 오징어를 잡는다. 집어등을 환하게 밝히는 이유는 오징어의 특성중 하나인 주광성을 이용하려는 것. 오징어는 낮에는 수심 깊이 있다가 밤이 되면 수면으로 올라와 소형 어류 등을 잡아먹는데 이때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며 움직이는 것을 움켜쥔다. 따라서 흔히들 알고 있는 지렁이와 같은 미끼를 사용하지 않고 플라스틱이나 나무와 같은 재질로 미끼 모양을 만들어 여기에 색채를 넣거나 형광물질을 칠해 자연산 미끼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자료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 어선이 사용하고 있는 집어등은 대부분 1~2kw 백열등을 수 십 개씩 사용하는데 배의 크기가 클수록 더 많은 집어등을 사용한다.

수동롤러 앞에 각자 편한자세로 자리를 잡은 선원들이 출발 신호를 보낸 것도 아닌데 일제히 낚싯줄을 바다에 던진다. 바다의 깊이에 따라 낚싯줄의 경심과 길이가 달라지는데 명성호의 경우 10톤 미만의 채낚기 어선으로 보통 수심이 50미터 정도 되는 곳에서 자리를 잡는다. 이러한 경우 5미터 정도의 낚싯줄에 대여섯개의 형광 미끼가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 있 채낚기를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수동롤러위에 낚싯줄이 걸쳐지면 잡아당기고 다시 풀어주는 채임질을 여러 번 반복하는데 오직 손의 감각에 의존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어등의 환한 불빛 사이로 가느다란 물줄기 하나가 반짝인다. 오징어가 잡혀 올라오며 내뿜는 것이다. “대여섯번 이러고 있으면 올라와 오징어가. 많이 잡힐 때는 여러 마리 올라오기도 하고….” 40년이 넘게 바다에서 살아온 베테랑 선원의 말이다. 기술이 발달해 자동조상기로 잡는 것도 있지만 오징어는 아직까지 선원들의 감각으로 잡는다는 것이다. 잡혀 올라오는 오징어는 본능 적으로 먹물을 쏘아 대며 반항하지만 노련한 선원들의 손놀림 한번이면 순식간에 수조통으로 입수한다.

꼬박 10시간 동안 반복되는 오징어 채낚시는 동해바다에 아침여명이 드리워지고 집어등이 꺼지면 끝이 난다. 다시금 물돛을 들어 올려지고 수조통에 그득한 살아있는 오징어들은 고성수협위판장에서 제 주인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경매가 끝나면 명성호는 또 다시 오징어가 지천인 바다로 향할 것이다.

"전국 오징어잡이 어선 집결, 진도항"

지구 온난화로 인한 해양 생태계 변화는 최근 몇 년간 우리바다의 수산활동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대표적으로 오징어잡이가 그러하다. 오징어 주산지로 알려진 동해안에서의 어획량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남해안과 서해안에서 오징어 대풍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전라남도 진도에 위치한 진도항(서망항) 역시 본래 꽃게가 유명하지만 올해 7월 들어 전국에 있는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몰려들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진도항의 오징어잡이를 체험하기위해 몸을 실은 범승호 역시 부산에서 왔다고 한다.

진도항에서는 동해에서 주로 거래되는 산오징어와는 달리 오징어잡이 어선에서 잡은 즉시, 얼음이 채워진 하얀색의 박스로 포장되어 수협위판장으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 적이다. 그래서 ‘박스배’라고 불리어지는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대부분이다. 산오징어가 드물게 거래되는 이유는 거리 때문이다. 진동항에서 오징어 어장이 형성되는 해상까지 가려면 보통 5시간을 넘게 항해를 하는데 수조통에 담겨진 오징어가 5시간을 넘게 산채로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진도항으로 몰려든 오징어잡이 어선들 대부분은 20톤 이상의 대형선박들이 주를 이룬다. 얼음을 채워서 보관하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오랜 시간 항해를 하기 때문에 한 번 출항시 소비하는 기름이 많기 때문이다.

진도항을 출발해 5시간을 항해한 범승호가 도착한 곳의 위치는 북위 33도 44분, 동경 125도 48분으로 조금만 더 가면 제주도가 보인다고 한다. 물돛을 내리고 해가 질 무렵 집어등이 켜지니 여느 오징어잡이 어선들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이 이어진다. 수동롤러 앞에서 오징어 채낚시를 하는 선원들의 진지한 모습과 낚여 올라오는 오징어가 쏘아대는 먹물이 배안을 덧칠한다.

한번에 올라오는 오징어가 서너마리, 확실히 동해보다 많은 어획량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오징어가 잡혔을 무렵 처음 보는 풍경이 펼쳐진다. 하얀 박스에 담겨진 얼음을 잘게 부순 후 평평하게 만들더니 그 위로 갓 잡은 오징어 20마리를 가지런히 펼쳐 담는 것이다. “보통 개인당 15개이상은 해야 되는기라‥, 다 채울라믄 팔이 빠지삔다” 갑판장의 설명인데, 수동롤러를 사용하는 선원이 10명이니 150박스는 해야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만큼 오징어잡이가 힘든 작업임을 반증하는 것일 터.

새벽 6시, 배안은 하얀 박스로 가득하다. 족히 150여 박스는 넘어 보인다. 일반인이 보기엔 꽤나 많은 양이지만 선장 얼굴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해 보인다. 손해는 안보지만 많이 남는 편도 아닌 정도란다. 다시 진도항에 돌아와서 보니 그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200박스가 넘는 어획고를 올린 어선들이 즐비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원하는 가격에 낙찰이 됐는지 웃는 얼굴로 “우린 또 나갈 낀데, 또 갈끼가?” 농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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