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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의 기다림 세상에 나온 ‘애도’
400년의 기다림 세상에 나온 ‘애도’
  • 배석환
  • 승인 2019.06.12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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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현·고채훈 부부의 작은 호미질이 만든 별정원

애도가 고향인 김상현씨가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섬의 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다니기 힘들었던 숲길을 개간해 탐방로를 조성한 별정원. 그 세월만 8년이 넘었다. 지금은 당당히 전남 1호 민간정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바다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도착한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도항. 사방이 섬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다는 너무도 고요하다. 여객선터미널 한 곳에 쑥섬으로 가는 선착장이라는 푯말이 있지만 운항시간이 아니라 개찰구는 닫혀있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아도 다른 섬에 비해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이 제한적이라 자칫 배를 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곳이 애도다. 특히 마을 주민들이 같이 탑승하는 경우는 마을 주민들을 우선하기 때문에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섬은 나로도항에서 눈으로 관찰이 가능할 정도로 근접한 곳에 있다. 애도라는 명칭은 2000년대 초반에 바뀐 것이라 한다. 이전에는 ‘봉호도(蓬湖島)’로 불렸다. 쑥이 많이 나오고, 다른 곳에 비해 그 질이 좋아 섬의 자랑거리인 쑥이 섬의 이름이 되어 버렸다. 정기선을 탑승한지 5분도 되지 않아 도착한다. 마을 입구에는 주민들이 특산물을 파는 가판대가 보이고 탐방로를 그려 놓은 표지판 아래로 입장료를 내는 사각통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입장료를 넣어도 되지만 보통은 정기선 직원에게 입장료와 승선료를 같이 지불한다. 본격적인 섬 탐방에 앞서 정기선 직원이 섬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해주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안내를 받는 것과 아닌 것에 큰 차이가 있다. 섬에 대한 구전과 역사를 듣지 못하고 간다면 그저 그런 풍경이 되겠지만 사전 지식이 있다면 마을 건물들과 돌담을 아무렇지 않게 스쳐 지나갈 수 없을 것이다.

애도 선착장

마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왼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하지만 2시간 남짓 주어진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부터 보는 것이 효율적이니 다른 일행들과 같은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거친 바다의 파도와 바람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돌담 뒤로 빨간색의 건물이 눈에 뜨인다. 다른 가옥들과 확연히 다른 구조다. 우체국이다. 지금은 개인 가옥으로 쓰이고 있다.

지금이야 우체국이나 전화와 같은 전기 시설이 섬에 자리한 것이 평범하지만, 과거 섬에 이러한 시설이 설치되었다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있거나 재원이 있어야 가능했다. 나로도항 주변으로 인접하고 있는 여러 섬들은 일제강점기 수산업전초기지였다고 한다. 큰 파도를 막아주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어업활동이 활발했고, 수심이 깊어 큰 배가 접안하는데 제약이 없었다. 실제로 지금도 제주로 가는 커다란 여객선이 항을 드나들고 있다. 생선을 냉동하는데 필요한 전기시설과 제빙공장, 상수도 시설까지 가장 먼저 근대화를 시작한 곳 중 한 곳이다.

갈매기 휴게소

조금 더 가다보니 갈매기 모양의 휴게소가 나온다. 마을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 섬에서 유일한 화장실이 있는 곳이자 요기를 할 수 있는 장소다. 휴게소 옆으로 산으로 이어진 길부터가 탐방로의 시작이다. 난대 원시림의 특성을 간직하고 있는 숲은 초입부터 하늘을 보기 어렵다. 나무와 덩굴, 여러 식물들로 덮여 있어 혼자서 들어서면 발걸음을 주저하게 만든다. 이곳이 400여 년 동안 개방되지 않았던 이유는 마을사람들이 이 숲을 신성시했기 때문이다. 섬 문화의 특징 중 하나인 당산제를 지내는 곳이 바로 이 숲이다. 숲의 가장 깊숙한 곳에 당제를 지내는 신당이 있다. 가는 길에 육박나무가 쓰러져 있어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너머로 위치하고 있다.

숲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은 곳에 여러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 구전들은 섬을 지탱해온 후박나무, 예덕나무, 육박나무, 동백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 기둥에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당할머니 나무’다. 후박나무 기둥에 여인의 젖가슴 형태의 모양이 봉곳하게 올라와 있다. 넉넉한 가슴을 가진 모양이 당할머니의 푸근함을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낮잠 자는 동자승, 코알라 등 누군가의 입에서 시작된 관찰력이 지금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당할머니 나무

터널 같던 숲을 빠져나오면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진다. 4월과 5월에는 유채꽃과 비슷한 생김새를 가진 갓꽃이 주인공이다. 탐방길 왼편으로 애도와 이어진 무인도가 있다. 과거에는 사람이 살았지만 지금은 쑥으로 뒤덮인 곳이 되어 버렸다. 경사길을 올라 하늘을 맞닿으니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진다. 애도를 찾는 이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별정원’이다.

별정원

평범했던 섬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것은 소박한 김상현·고채훈 부부의 작은 호미질에서 시작되었다. 애도가 고향인 김상현 씨는 중학교 국어선생님이다. 고향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계획했던 작은 소망으로 버려진 섬의 땅들을 사들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다니기 힘들었던 숲길을 개간해 탐방로를 조성한 것이다. 노후를 대비해 시작했다면 펜션을 지었겠지만 애도 주민들과 더불어 성장하는 길을 찾기 시작했고, 주말마다 섬을 찾아 정원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세월만 8년이 넘었다. 지금은 당당히 전남 1호 민간정원으로 인정받고 있는 곳이 바로 별정원이다. 계절마다 다른 꽃이 심어진다. 꽃과 바다, 그리고 하늘의 경계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귀한 호사다.

정원을 따라 평탄하게 이어진 길은 갑작스레 기울어진다. 바위 사이로 이어진 길은 마을 선남선녀들이 사랑을 속삭였던 장소였다고 한다. 신선대를 지나 바위 절벽에 위치한 성화등대를 끝으로 거친 탐방로는 끝이 났다. 다시금 잘 다듬어진 길이 이어진다. 과거 마을 사람들이 빨래를 하던 쌍우물 터를 지나 동백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바다와 맞닿아 길게 뻗어 있다. 동백꽃들이 떨어진 길은 돌담길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든다. 바람이 지나다닐 수 없을 만큼 촘촘하게 쌓아 올려진 돌담은 전형적인 어촌풍경을 자아낸다.

돌담길

어느새 출발지인 선착장이 보인다. 너무도 조용한 섬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을 경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고양이다. 애도에는 다른 섬들과 비교해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개와 무덤이다. 개를 기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정확한 이유를 찾을 수 없었지만 마을 주민들이 고양이만 키우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무덤의 경우는 섬이란 지형적 특성상 좁은 면적에 묘를 쓰지 않았던 것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고양이만 있는 섬의 특성을 활용해 고양이 섬을 조성한다는 계획이 진행 중이라 하는데 과연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무척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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