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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거들고 자연이 만든 돌미역
사람이 거들고 자연이 만든 돌미역
  • 배석환
  • 승인 2019.06.11 17: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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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반한 미역 ‘연기 돌미역’

채취한 돌미역을 말리고 있다

생일상에 빠지면 섭섭한 미역국. 미역은 칼슘, 요오드, 알긴산 등이 풍부해 산모의 기력을 회복하는 필수 해조류다. 대량생산을 위한 양식미역과 거센 물살과 바위에 붙어 자라는 자연산 미역으로 알려진 돌미역으로 소비자들에게 판매되고 있다. 연중 단 20일만 허락된 남해안의 대표적 청정바다인 통영시 연기마을 돌미역 채취현장에 가보았다.

돌미역 채취는 연기마을 선착장 바로 앞에서 진행된다

경상남도 통영시와 거제시가 마주 보고 있는 바다 견내량. 임진왜란 때 한산도 두억포에 있는 통제영을 지키는 통성을 견내량의 덕호리에 쌓아 중요한 방어진지 역할을 한 곳으로 옥해전과 한산대첩의 배경이 되었던 해역이다. 길이는 약 3km, 폭은 400미터 정도로 좁고 작은 섬들이 산재해 물살이 거세지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 바다 밑에 암초가 많아 예부터 해난사고가 잦았던 지역이다. 따라서 바닷일을 하기엔 그다지 좋은 조건이 아니다. 하지만 미역만큼은 예외였다. 깨끗한 바다는 물론이거니와 빠른 유속 그리고 암초 돌미역이 자라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이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견내량을 터전으로 살아가고 있는 연기마을은 100여 가구가 모여 있는 작은 어촌이다. 해마다 4월과 5월 수온과 햇볕이 잘 드는 날에 맞춰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명품 돌미역을 채취한다.

따스한 봄기운을 가득 품은 햇살이 연기마을 선착장을 뜨겁게 달구기 시작하는 오전 아홉시. 선착장은 이미 돌미역으로 가득했다. 이른 아침부터 채취한 미역을 말리고 있는 것이다. 며칠 동안 비가 와서 미역을 채취할 수 없었는데, 다행히 수온이 더 높아지기 전에 맑은 날이 찾아왔다. 연기어촌계원 대부분이 바다로 나가 돌미역 채취에 여념이 없었다.

“연기마을 100여 가구 중에 80가구 정도가 어촌계원입니다. 과거에는 가구마다 배가 있어서 돌미역 채취하는 날에는 모두 바다에 나가곤 했는데 지금은 25척 정도가 돌미역을 채취하고 있습니다.” 장동주 연기어촌계장의 말이다.

채취는 선착장 바로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견내량 대부분에서 돌미역이 나오지만 수심이 낮고 암초가 많은 지역은 연기마을과 맞은편 거제도 광리마을로 이 두 마을이 대표적인 돌미역 주산지라 할 수 있다.

채취방법은 간단하다. 대나무와 단단한 재질의 나무를 이어붙인 긴 장대를 바다에 넣어 미역을 건져 올린다. 긴 장대는 표준화된 명칭은 따로 없고 주민들은 트리대(털이대)라 부른다. 과거부터 사용한 전통방식의 돌미역 채취 도구인데 그 역사만 500년에 이른다. 장소를 바꾸기 위해 움직일 때만 엔진을 사용하기 때문에 작업을 하고 있을 시에는 닻을 내려둔다.

트리대의 구조를 살펴보면 먼저 바다에서 미역을 감아 돌리기 편하게 만들어 놓은 지팡이 모양의 손잡이와 5미터 정도 길이의 대나무가 연결되어 있다. 대나무는 2미터 정도의 단단한 재질의 나무에 다시 연결된다. 나무의 끝부분에는 두 개의 구멍이 있다. 그 안으로 길이가 다른 나무를 박아 넣어 ‘X’자 모양을 만든다. 바닷속에서 돌미역을 잘 감기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장동주 연기어촌계장이 돌미역을 자신있게 들어보이고 있다

사람의 힘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기 때문에 동력이 없는 배도 돌미역 채취에 나설 수 있다. 이날 한 척의 무동력 어선이 노를 저으면서 돌미역을 채취하고 있었다. 배에는 마을 최고령 어업인과 아들이 함께였다. 대를 이어가며 전통방식 그대로 삶을 이어 나가고 있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미소짓게 만든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연기마을 돌미역이 언급되었고, 임금에게 진상했던 만큼 맛과 영양이 다른 미역들보다 월등히 좋습니다. 특히 우리 마을에서 나오는 돌미역은 예부터 내려오는 전통방식 그대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장동주 어촌계장의 설명이다.

어디선가 둔탁한 소리가 나더니 다들 웃는다. 트리대가 부러진 것이다. 초보라고 부러진 것은 아니다. 경험이 오래되었더라도 욕심이 과하면 부러진다. 대부분 대나무 부분이 부러진다. 돌미역을 감아올리다 휘어지면서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진 것이다.

돌미역을 가득 실은 배들이 선착장으로 들어온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돌미역을 수레에 옮겨 싣고 각자의 구역에서 말리기 작업에 돌입한다.

“채취하는 것도 중요하긴 한데 말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날씨가 흐리기만 해도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해가 3일 이상 나오는 날을 골라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채취한 양에 비해 말릴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장동주 어촌계장의 말이다.

양식미역의 경우 대량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수작업으로 말리는 비율은 얼마 되지 않는다. 건조기에 돌려 말리거나 소금에 절이는 자숙과정을 거쳐 냉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돌미역의 경우 볕에 말리는 과정이 빠져서는 안 된다. 이 작업이 아주 고되다. 한쪽만 말리면 안 되기 때문에 어업인들은 시간에 맞춰 일정하게 돌미역을 뒤집어 주고 있었다.

말리는 방법도 조금 차이가 있었다. 기다란 직사각형 틀에 맞춰 말리는 것이 있는가 하면 채취한 돌미역의 미역귀와 상처 난 부분을 제거한 뒤 그대로 말리기도 한다. 틀에 맞춰 하는 것이 전통방식이라 한다. 하지만 손이 더 많이 가서 주문을 받을 때만 만들어 두기 때문에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한때 연기마을에서 나오는 돌미역이 사라진 시기가 있었다. 지난 2010년 어촌계원들의 중요한 소득원이었던 돌미역의 채취량이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여러 방면으로 원인을 조사했지만 뚜렷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미역 포자 생성용 어장을 만들어 자연 방란을 유도하고 잠수부를 동원해 돌미역이 바위에 뿌리는 내리는 것을 방해하는 식물들을 제거하는 등 2년간의 노력 끝에 다시 돌미역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2013년. 이후 마을 주민들은 소중한 돌미역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채취기간을 단축하며 생산량 안정화에 정성을 쏟았고 현재는 과거에 비할 바 아니지만 다시금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어느새 연기마을 대부분이 돌미역으로 뒤덮였다. 3일간 따스한 햇볕이 선사하는 마법으로 임금이 반한 명품 돌미역이 탄생하게 된다. 양식미역에 비해 초록빛이 아닌 다소 어두운 색을 발하고 있기에 그 가치를 잘 모르는 이들은 맛이 없을 것이라 선입견을 가질지 모르지만, 부드러운 식감과 감칠맛은 양식미역에서는 접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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