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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나는 꽃을 눈에 담으니 마음에 다시 핀다
피어나는 꽃을 눈에 담으니 마음에 다시 핀다
  • 박윤진(외부필진, 여행전문기자)
  • 승인 2019.03.14 1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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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산수유마을

코끝을 시리게 만들었던 겨울바람이 물러갔다. 살랑거리는 여인의 치마폭처럼 수줍게 불어오는 봄바람. 사람들은 움츠렸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밖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다. 삭막하던 산과 들에 알록달록한 색이 피어나가 시작한다. 봄이 왔다.

사람들은 이맘때면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려 한다. 특히, 따뜻한 기온이 먼저 찾아오는 남도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봄의 전령사들이 꽃망울을 터트리고 대지를 오색물감으로 색칠하고 있는 남도 봄길은 근엄함의 상징인 아버지들의 마음도 어렵지 않게 사춘기 소녀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봄꽃을 대표하는 가장 대중적인 꽃은 아마도 벚꽃일 것이다. 가장 널리 분포되어 있고 화려함에 있어 다른 꽃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벚꽃보다 먼저 우리네 마음을 설레게 하는 꽃들이 있다. 가장 먼저 피는 꽃이 산수유 꽃이다. 이름도 생소한 산수유는 가을에 열리는 빨간색 열매가 약재로 쓰이기 때문에 벚꽃처럼 그저 보이기만 하고 끝이 나는 것과 다르다. 농가의 소득원이 되는 소중한 꽃나무다.

산수유

이러한 산수유가 하나의 마을을 가득 메운 곳이 있으니 바로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일대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마을이라 조용하고 한적한 마을이지만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70% 정도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넓은 면적에 피어나는 산수유 꽃이 노란색이다 못해 황금빛을 발하는 시기가 되면 ‘산수유 축제’가 열린다. 처음부터 산수유가 자랐던 것은 아니다. 생계수단인 논과 밭이 적었기 때문에 대체 수단으로 산수유를 택하게 된 것이다.

지금의 마을 풍경은 예전 모습과는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다소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좁은 골목에 외부인들이 차량을 가지고 들어가는 바람에 밭일을 나가야 하는 경운기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던 시절과 비교하면 마을 주민들에게는 반가운 변화일 것이다.

산수유 꽃이 많이 피어 있는 지역은 크게 두 군데로 나뉜다. 마을 입구에서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넓은 주차장과 ‘산수유 사랑공원’, ‘산수유 문학관’이 조성된 곳과 왼쪽 차로를 따라 가면 볼 수 있는 ‘산수유 꽃담길’이다. 사랑공원과 문학관 역시 꽃담길 코스에 포함이 되기는 하지만 그나마 예전 모습을 간직한 곳은 왼편의 꽃담길이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공원에 비해서 마을의 돌담, 그리고 지리산에서 흘러온 물줄기가 고즈넉한 분위기로 만들어 준다.

1시간이면 충분히 걸을 수 있는 꽃담길은 가을에 들러도 좋다고 한다. 산수유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어 노란 꽃으로 물들었던 마을이 붉은색의 정열적인 마을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겨울을 힘겹게 버틴 오래된 바위의 이끼와 전통한옥, 그 사이에 살포시 피어나는 산수유 꽃. 꿀벌들의 바쁜 날갯짓도 멈추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전라남도 광양군 다압면 청매실농원

지리산 섬진강 줄기를 따라 피어나기 시작하는 봄꽃의 다음 손님은 매화꽃이다. 산수유 꽃과 비슷한 시기에 피는 꽃으로 흰색과 붉은색이 대표적이다. 생김새가 벚꽃과 비슷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을 정도다. 우리 선조들의 사랑을 받아온 매화꽃은 사군자 중 하나로 더 알려져 있다.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고 소박하지만 고결한 꽃을 피워내는 모습을 사랑했다.

매화꽃은 매실나무의 꽃이다. 즉, 산수유와 마찬가지로 매화꽃 역시 매실을 얻기 위해 심었던 매실농원들이 알려지면서 지금의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전라남도 광양군 다압면 청매실농원이다.

사람들은 이곳을 매화마을이라 부른다. 하동군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줄기가 바로 앞에 흐르고 있어 매화꽃이 만개한 날에 들어오는 풍광이란 세계 어느 나라의 꽃축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화려하다.

마을을 가득 메운 매화는 1940년대 일본에서 들여온 묘목을 심었던 것이 그 출발점이다. 그 중심에는 청매실농원의 가족들이 있다. 사람들이 보기엔 그저 심기만 하면 되는 것 같은 매실나무지만 농사일에 쉬운 것은 없다. 부단한 노력으로 지금처럼 만들어진 것이다.

멀리서 보면 산 중턱에 누군가 소금을 뿌려 놓은 것처럼 보인다. 바람이 불기라도 하면 그 장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탈길을 오르는 수고를 해서라도 전망대까지 올라가야 하는 이유다. 매화꽃만으로 충분히 아름답지만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곳이 있으니 영화세트장이다. 과거 영화 <천년학>의 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초가집이 매화꽃 중심에 자리 잡아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남도 봄길은 다시 바다로 이어진다. 광양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경상남도 남해군은 유채꽃이 들판을 물들인다. 바닷바람이 대지를 흔들어 깨우는 시기 잠자고 있던 봄나물들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과실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나물로 무쳐 먹기는 하지만 대중적이지 않아 아는 사람만 찾는다. 그런데 제주를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유채를 기른다. 대량으로 기르는 곳은 식용유를 만들기 위한 재료로 재배를 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경관용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다랭이마을
경상남도 남해군 두모마을

전국적으로 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 그리고 전라남도 나주와 고창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숨겨진 보물 같은 곳이 바로 남해군의 다랭이마을과 두모마을이다. 누군가 목적이 있어 가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돈된 느낌은 없지만 그래서 더 정겹다. 길가에 핀 꽃처럼 논둑에 흐드러지게 핀 모습이 그 옛날 민초들이 가지고 있는 소박하지만 해맑은 모습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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