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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장어다리로 이어진 여자도 이야기
붕장어다리로 이어진 여자도 이야기
  • 배석환
  • 승인 2019.03.11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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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도 붕장어다리

 

20여 년 전 대학생활을 시작할 무렵 카메라 한 대를 둘러메고 무작정 사진을 찍으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머물게 된 여자도. 지금처럼 인터넷 접근이 쉽지 않았기에 섬 이름조차 몰랐다. 작은 섬에서 해맑게 뛰어놀던 아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외지인이 신기했는지 졸졸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물어보느라 정신없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정기선이 아닌 작은 어선으로 사람을 실어 날랐기에 어디서 배를 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고장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처럼 조각나버린 기억을 벗 삼아 인터넷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겨우 어느 섬인지 알 수 있었다.

‘여자도’는 얼핏 들으면 여자만 사는 섬이라 오해할 만큼 특이한 이름이다. 하늘 위에서 보면 남이란 뜻의 너 여자 형이라 汝(여)자와 육지와 거리가 멀다하여 모든 생활 수단을 스스로 해결한다는 뜻의 스스로 自(자)를 써서 여자도라 불린다고 한다. 그 옛날 어떻게 높은 곳에서 섬을 내려다보았을까 하는 의문은 이러한 지명을 읽을 때 마다 속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은 난제다. 2개의 유인도와 5개의 무인도가 있는데 유인도 중 큰 섬을 대여자도, 작은 섬은 소여자도라 했다.

섬달천이라는 곳에서 작은 도선을 타면 된다. 그때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입도하는데 많은 제약이 있다. 우선 30여 명 정도만 되어도 승선이 힘들 수 있다. 그리고 개인 승용차는 들어갈 수 없고, 짐이 많아도 문제가 된다고 한다. 낚시를 즐기는 이들이 자주 찾는 봄이나 가을은 그나마 사람들로 분비지만 겨울은 섬 주민들만 이용하는 배가 되어 버린다. 현금으로 결제해야 이용이 가능하다. 배에서 앉아 기다리면 누군가 돌아다니면서 승선료를 받는다. 섬까지 가는 시간은 아주 짧다. 대략 15분 정도다. 섬달천에서 섬으로 들어가는 항로에서 가장 먼저 들르는 섬은 소여자도이며, 이후 대여자도에 있는 마파마을과 대동마을 순으로 내릴 수 있다. 과거에는 대여자도와 소여자도가 다리로 연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잘못 내리면 큰 낭패였지만 지금은 다리만 조금 힘들뿐 충분히 걸어갈 수 있다.

송여자마을

 

소여자도에 내리니 추도와 마찬가지로 너무도 조용하다. 고양이들만이 서로 영역싸움을 하느라 시끄럽게 울어대고 있다. 큰 바위에 ‘어서오이다 송여자’라 적혀 있다. 소여자도는 소나무가 많아서 소나무 송(松)자를 써서 송여자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대여자도에 비해 가구수가 적기 때문에 문명을 누릴 수 있는 인프라가 무척이나 부족하다. 헌데 아이러니하게도 관광객들이 하룻밤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은 소여자도에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소여자도에 짐을 풀고 대여자도로 향한다.

송여자마을

 

여자도는 전체적으로 낮은 구릉지대다. 높은 산이 없기 때문에 둘레길 역시 그리 힘들지 않다. 사람들이 찾기 힘든 조건임에도 트레킹코스가 잘 가꾸어져 있다. 시원하게 트여있는 시야는 걷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주의해야 할 점은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길이 사라져 버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작은 섬이지만 과거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다. 지금은 숙박시설로 만들어져 마을주민들이 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마을이 워낙 작기에 한 바퀴 둘러보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아기자기하게 만들어진 벽화나 조각품들이 마을만큼이나 소박하게 잘 어우러져 있다. ‘붕장어다리’를 건너 대여자도로 향한다. 다리는 낚시를 위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저기 낚시를 할 때 주의사항이 적혀져 있다. 붕장어다리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여자도의 주 수산물 중 하나가 바로 붕장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깨끗한 갯벌이라 알려진 여수 여자만의 중심이 바로 여자도인 것이다. 이러한 곳에서 나오는 장어이다 보니 인기가 높다. 다리는 장어가 움직이는 형상을 표현하고 있어 반듯한 다리가 아닌 롤러코스터가 지나가는 길과 같이 구부러지고 휘어져 있다.

붕장어다리

 

다리를 건너면 곧바로 마파마을에 도착한다. 여자도 청년회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어 마을이 부산하다. 하지만 어디에도 청년이라 부를 수 있는 나이의 외모는 없었다. 대부분 50세 이상이다. 노령화가 심각한 섬마을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윷놀이를 즐기며 친목을 다지는 모습에 명절에 고향을 방문한 정겨움이 느껴진다. 여자도는 12월부터 3월까지 휴어기간이 된다고 한다. 밭농사도 겸하고 있지만 대부분 어업에 의존하고 있어 겨울에는 그동안 미뤄왔던 마을 공사를 하거나 어선 수리를 하는데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대여자도

 

옛 추억을 떠올리며 걸어도 너무도 생소한 풍경만 눈에 들어온다. 한참을 걸으니 그때서야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여전히 학생들이 다니고 있는 작은 초등학교, 커다란 종을 울리는 교회의 모습이 기억 저편에서 뛰쳐나와 겹쳐진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때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주인을 잃어버린 농구골대는 바람 소리만 가득하다.

마파마을

 

해가 기울어져 간다. 다시 소여자도로 향한다. 붕장어다리와 함께 펼쳐질 일몰을 놓칠 수 없어서다. 구름에 가려 선명하게 떨어지는 해를 보기 힘들지만 구름이 있으니 나름의 운치가 매력적이다. 살며시 모습을 보여주곤 다리 위에 붉은 물감을 뿌리고 사라진다. 그래서 더 간절하게 다시 보고 싶어진다. 마치 여자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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