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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영롱한 불빛을 밝히다….
바다에 영롱한 불빛을 밝히다….
  • 기수정(외부필진, 취재전문기자)
  • 승인 2019.02.27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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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등대의 지킴이 양희룡 주무관

태양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이내 한 줄기 빛이 캄캄해진 세상을 환하게 비춘다. 어둠이 내려앉은 캄캄한 바다를 비추는 등대의 빛줄기는 배에게도, 항해사에게도 ‘생명의 빛’이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밤을 새워 밤바다의 안전을 지키는 등대에는 늘 등대지기가 함께 한다. 생명의 빛을 밝히는 등대지기의 마음은 참으로 거룩하다.

 

■ 34년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우직함

우리나라에 있는 37개의 유인등대에는 110여명의 등대지기가 24시간 하루도 빠짐없이 바다를 지킨다. 영도등대에 근무하는 양희룡 주무관도 그중 한 명이다. 30년 넘게 한 길을 걸어온 양희룡 주무관의 공식 명칭은 부산지방해양수산청 소속 항로표지관리원이다. 하지만 그는 ‘등대지기’로 불리는 것이 더 좋다. 앞으로도 그렇게 불리고 싶다. 바다의 안전, 소중한 생명을 지키는 등대지기란 단어야 말로 가장 명예로운 단어가 아니겠는가.

 

양희룡 주무관

‘오늘도 무사히…’ 양희룡 주무관이 마음속으로 수만 번 되뇌는 말이다. 늘 노심초사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는 양희룡 주무관은 수평선 위로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처음에는 그런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어요. 지인의 소개로 공채 시험을 치렀는데 덜컥 합격이 됐지 뭐에요. 1985년, 그렇게 등대지기가 됐어요. 직업의 특성도, 하는 일도 모른 채 취업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에 입사를 했죠. 근데 이 일을 사랑하게 된 거에요. 그렇게 눈 깜빡할 새 벌써 34년이 흘렀네요.” 군대 제대 후 일자리를 찾던 중 우연히 공채 시험을 통해 등대지기와 연을 맺게 된 그가 등대지기 생활을 시작한 곳은 마산지방해양청 소속 소매물도항로표지관리소였다. 그의 섬 생활 ‘첫 경험’이었다. 뭍과 뚝 떨어진 섬 생활이 외로울 법도 했지만 양희룡 주무관은 묵묵히 버텨냈다. “소매물도가 유명한 관광지잖아요. 이 섬에 근무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었어요. 어촌 주민들도 모두 친절하게 잘 대해주셨고요.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섬 생활은 정말 서글펐지만 차차 이 생활에 적응해 나갔고 소매물도, 오륙도, 가덕도 등대지기를 거쳐 지금 영도 등대에서 근무 중이에요. 어느새 퇴임할 때가 됐네요, 하하하.”

■ 사랑하는 가족을 뭍에 두고 시작한 외로운 섬 생활

양희룡 주무관은 등대지기가 됐던 1985년 그때 그 시절을 회고했다. 그 당시 등대의 생활환경은 참으로 열악했다. TV와 전화기도 없었다. 말 그대로 ‘고립’된 생활이었다. 간단한 생필품만 있는 작은 공간뿐이었다. 주간 당직과 야간 당직을 나눠 직원 모두가 몸을 뉘일 시간도 없이 힘든 생활을 했다. “지금은 등대지기 근무 환경이 정말 좋아졌어요. 요샌 휴대폰도 있고 TV도 있고 심지어 인터넷도 되니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잖아요? 정말 아무것도 없었어요. 정말 외딴 섬 속에서 고립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죠. 문화생활이요? 꿈도 못 꿨어요.”

영도등대

 

강산이 세 번도 더 바뀌었을 34년을 등대지기로 일하면서 우여곡절도 많았다. 특히 덴빈과 볼라벤, 매미 등 대형 태풍이 왔을 때는 보름 이상을 등대에 갇혀 생명을 위협받기도 했다. “태풍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줘요. 50m가 넘는 파도에 유리창이 깨지고 전기가 끊기기도 하죠. 비바람이 부는 날이면 신선바위에서 사무실 바로 앞까지 파도가 치기도 해요. 어떤 날은 물고기가 창문 너머에서 인사를 하고 간다니까요.”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 가족과 평범한 일상을 함께 하는 일 역시 양희룡 주무관에겐 ‘꿈’일 뿐이었다. “등대지기로서 가족과의 평범한 삶을 기대하진 못해요. 하지만 가족이 아플 때는 정말 심적으로 힘들어요. 한 번은 아이가 아프다며 아빠를 찾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하필 기상악화로 발이 묶여 나갈 수가 없었어요. 아빠로서 곁에 있고 싶은데 그러질 못하는 심정 말도 못 해요. 정말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대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동료와의 ‘끈끈한 정’으로 달랬다. 외로움과 힘겹게 싸워야 하는 등대지기 생활, 이 고난의 세월은 서로의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직원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지금까지 잘 견뎌왔다.

■ 오륙도 등대의 무인화, 변화의 바람 가슴 아파

1906년 12월 첫 불을 밝힌 영도등대는 무려 113년 동안 부산항의 길목에서 뱃길의 길잡이가 되어 소중한 불빛을 밝혀왔다. 오랜 세월의 더께만큼 등대지기 양희룡 주무관도 베테랑 등대지기로 성장해 있었다.

 

영도등대 내부

등대지기는 어두운 바다를 밝히는 등명기가 잘 작동하는지 점검해 어둠 속에서 배의 안전한 항해를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다. 양희룡 주무관 역시 등대 맨 꼭대기에 위치한 등명기 점검을 위해 최소 하루에 1~2번은 아파트 12층 높이의 등대를 오르내린단다. “등대에 올라 단순히 어둠만 밝히는 게 업무의 전부가 아니에요. 안개가 끼거나 눈·비가 와 시야가 흐려질 때는 무선 신호기를 작동 시 항해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3시간 간격으로 해양기상을 관측해 기상청이나 해운조합 운항 상황실, 해경, 어업지도선 등에 해양기상을 전달해야 해요.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어요.”

세월이 흐르면서 등대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부산지역 유인 등대 삼총사로 불리던 오륙도 등대와 가덕도 등대, 영도 등대 중 오륙도 등대가 81년 만인 2018년 말 무인화된 것이다. 추세에 따라 무인 등대의 무인화 추세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양 주무관은 “선배들의 피와 땀이 서린 오륙도 등대가 무인화됐을 때 마음이 정말 아팠어요. 저도 오륙도에서 근무했기에 그 추억을 떠올리면 정말 가슴이 아프죠.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 등 환경이 변화하면서 결정된 사안이지만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쉽다”며 착잡해했다.

오륙도 등대의 무인화뿐이겠는가. 영도 등대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큰 변화를 겪었다. 시설 노후화로 2004년 등대 시설물을 새롭게 교체하게 된 것이다. 시설물을 교체하는 동시에 예술작품 전시실, 자연사 박물관 등을 함께 마련하며 이곳 영도 등대는 명실상부한 부산의 해양관광 명소로 탈바꿈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개성 넘치는 조형 등대가 하나둘씩 생겨났고 등대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도 점점 늘었다. “영도 등대가 무인화 되면서 우리 등대지기들은 더 바빠졌어요. 갤러리·전망대 관리까지 우리의 몫이 됐죠. 그래도 어둠을 밝히는 등대가 명물이 되어 많은 이에게 즐거움을 주니 행복해요.”

■ 유종의 美 거두고 가족과 못한 여행 다니고파

양희룡 주무관은 앞으로 4년 후면 등대지기로서의 삶을 끝내고 정년퇴임을 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 등대지기는 “등대지기를 하면서 주무관님과 보낸 세월이 집사람과 보낸 세월보다 더 많아요. 등대를 지키며 먹고 자고 서로 부대끼며 산 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없이 소중하죠. 오랜 시간 옆에서 지켜봤는데 ‘아, 이 사람은 등대지기가 천직이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성실하고 우직해요. 마음이 따뜻해요.”

 

등대지기는 감정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사람만이 견뎌낼 수 있는 고된 직업이다. 쉽게 덤빌 수 없는 그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양희룡 주무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대를 차가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수십 년간 지켜낼 수는 없었으리라.

양 주무관은 업무를 마친 후에도 어디 멀리 가는 법이 없다. 그저 조용히 앉아 책을 읽으며 마음을 다스린다. “정년퇴임까지 4년 남은 시간 등대지기로서 후회 없도록 사명을 다해 열정을 바칠 거예요. 그러기 위해선 건강관리를 잘해야겠죠.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정을 쌓아왔던 동료들과도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려고 해요.” 퇴임 후에는 가보지 못했던 여행을 실컷 다니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여행 목적지가 ‘사찰’이다. 고된 세월의 무게를 묵묵히 견뎌온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하면 저 멀리 해외여행이라도 가고 싶다고 말할 듯한데 그는 왜 사찰을 콕 집었을까. “하루는 통도사, 하루는 해인사…. 사찰을 다니고 싶어요. 승려의 삶이 우리 등대지기와 참 많이 닮았거든요.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자제해야 해요. 억누르는 삶을 살죠. 그래서 더 애정이 있어요. 고즈넉한 사찰에서 생각도 정리하고, 사색하며 그동안의 삶을 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 소박한가요? 하하하.” 4년 후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빛을 밝히는 양희룡 주무관. 가공하지 않은 원석(原石)같은 그의 삶이 앞으로 더 보석(寶石)같이 빛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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