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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 맞으며 걷는 기찻길
바닷바람 맞으며 걷는 기찻길
  • 이광재(여행전문기자)
  • 승인 2019.02.27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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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길을 달리는 완행 기차소리. 심장이 뛰는 소리와 묘한 공명을 일으킨다

 

■ 우리나라 최초의 임해철도선 역사 속으로

부산, 항구 도시이자 식도락을 즐기는 이들이 사랑하는 곳. 해변을 따라 높게 늘어선 건물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냄과 동시에 오래된 골목길이 정겨운 도시의 매력 덕분에 언제나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여러 이색적인 공간이 소개되었지만 지금도 새로운 곳이 발견되고 있어 매번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핫플레이스를 대변하며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곳이 부산 해운대에서 송정해변까지 5km가량 이어져 있는 기찻길이다.

 

정식 이름은 동해남부선. 현재는 미포 철길로도 불리고 청사포 철길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동해남부선은 부산 진구와 경북 포항시 사이를 잇는 철도다. 1918년 경주에서 포항구간이 먼저 개통되었고, 1935년 부산에서 포항까지 연결되었다. 운행은 사람이 아닌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여러 자원을 착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철길은 지금도 운행 중인 구간이 있는 반면 그 역할을 끝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구간이 여러 곳 존재한다. 이러한 구간들 중 부산 해운대에서 송정역까지 연결되었던 구간은 우리나라 유일의 임해철도선이라 한다. 지난 2013년 12월 2일 복선화가 완료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폐선로가 되면서 덜컹거리는 기차소음은 사라지고 사람들이 기찻길 자갈을 밟는 소리가 채워지기 시작했다. 여러 문화행사가 열리면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아름다운 항구인 청사포와 수상스포츠의 메카인 송정해변까지 이어져 있는 철길은 노을이 지는 시간이 되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가 되었다. 최근에는 스카이워크인 ‘다릿돌전망대’가 생기면서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지가 되었다.

■ 버려진 철로에 사람들의 발길이 찾아 들다

 

해운대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오는 파도는 모래장벽에 막혀 다시 돌아간다. 겨울바다의 주인공은 사람들이 아닌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파도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 붓는다. 파도소리를 들어주며 해운대 해변을 따라 청사포쪽으로 이어진 해변길을 걸어본다.

 

작은 포구와 횟집이 즐비한 길을 지나니 길이 막혔다. 길은 다시 오르막을 향했다.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무심히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간다.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는 텃밭 사이를 지나니 갑작스레 철길로 이어진다. 어느 지점부터가 시작인지 알 수가 없어 다시금 해운대쪽으로 이어진 철길을 걸어본다. 마천루처럼 올라가고 있는 건물 공사장에서 길이 끝이 났다. 교통 표지판에는 미포오거리라 적혀 있다. 바로 이곳이 송정해변까지 이어진 철길의 시작이다.

이곳 지리를 잘 아는 토박이들은 철길의 시작을 알기 쉽지만, 부산이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시작점이다. 해변공원으로 탈바꿈 되고 있으니 눈에 잘 보이는 표지판이 생기길 바란다. 특히 ‘해운대 달맞이길’과 같은 구간에 만들어져 있기에 철길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은 철길이 아닌 달맞이길을 걷게 되기 때문에 미리 잘 알아보고 가야한다.

선로 위는 많은 여학생들이 화려한 옷을 입고 추억을 남기고 있었다. 생기발랄한 포즈로 추억을 남기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학창시절이 떠오른다. 가족단위 여행객들부터 연인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바다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철길을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래된 터널이 나온다. 자연 동굴로 만들어진 터널은 아니다. 시멘트로 만든 인공터널로 그 구간은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안으로 들어가면 수많은 이야기가 적혀 있다. 추억을 남기려는 이들의 사연과 이름으로 가득하다. 이 터널이 철길구간 중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이유는 영화 속 한 장면을 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캄캄한 터널로 빨려 들어가는 이미지를 연출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이 보았던 영화 속 주인공이 되어본다.

길은 터널 뒤로 막혀있다. 공사 중이란 간판이 야속하다. 공원화를 준비하면서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길 옆으로 펜스를 만들고 있다. 공사구간이 꽤나 길다. 터널부터 청사포까지 막혀있다. 할 수 없이 철길 위에 만들어져 있는 달맞이길로 오른다. 잠시 파도소리를 잊고 낙엽을 밟아 본다.

청사포 벽화

 

청사포로 내려가는 길은 중간 중간 재미난 벽화도 있지만 무엇보다 현대적인 감각과 철길이 주는 푸근함을 살린 카페와 음식점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피곤해진 다리를 위해 잠시 커피 한모금의 여유를 부려본다. 기찻길이 아니더라도 청사포항은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항구자체는 그리 크지 않지만 아름다운 등대 뒤로 펼쳐지는 일출과 일몰 그리고 싱싱한 해산물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청사포구간도 역시나 공사 중이다. 그래서 해변길을 통해 곧바로 ‘다릿돌전망대’로 가야 한다. 다릿돌전망대는 그 생김새가 조금 특이하다. 옆에서 보면 잘 안보이지만 위에서 보거나 아래에서 보면 전망대가 구부러져 있다. 뱀을 형상화 한 것이다. 바로 옆에 위치한 항구인 청사포에서 전해지는 구전에 따르면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이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져 돌아오지 못하자 그의 아내가 매일 바다를 보며 그리워하는 모습을 안타깝게 여긴 용왕이 푸른 뱀을 보내 여인을 데려와 남편을 만나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망대의 색부터 모습이 푸른 뱀과 닮은 것이다.

다릿돌 전망대
다릿돌 전망대

 

다릿돌전망대는 길이 72.5m, 폭 3m로, 전망대에서 수면까지 거리는 20m 정도이다. 투명한 유리 위를 걷노라면 누구나 겁을 내기 마련이다. 아쉬운 점은 겨울에는 운영하지 않는다. 투명 유리 위를 직접 걸을 수 있는 시기는 여름이다. 그것도 바람이 많이 불거나 비가 많이 오면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전망대 위에 올라 아래를 보면 암초가 여러 개 놓인 것을 볼 수 있다. 전망대에서 해상 등대까지 줄지어선 암초 5개가 마치 징검다리 같이 보여서 '다릿돌'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다행히 송정해변까지 구간은 공사가 끝나 철길 옆으로 나무데크 길이 조성이 되었다. 물론 철길로 걷고 싶으면 걸어도 상관없다. 겨울바다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온 몸에 한기가 들어찬다. 풍랑주의보 때문인지 바다에 어선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해안경비정이 경고음을 내며 돌아다닌다.

송정해변
송정해변

 

송정해변이 가까워질수록 조용하던 철길 위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서로 대화하는 소리가 아닌 비명소리다. 해변 쪽으로 바다 위에 검은 물체들이 수없이 많이 떠 있다. 움직인다. 해변을 덮치는 파도와 함께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영하의 날씨임에도 서핑을 즐기는 이들로 해변이 가득 메워져 있다.

노을이 드리워지는 시간이라 푸른 바다는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파도 역시 흰 옷을 갈아입었다. 큰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이 동시에 보드 방향을 바꿔 열심히 팔을 휘젓는다. 파도를 점령하는데 성공한 서퍼들은 일어서 환호를 지르지만 실패한 이들은 파도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만다. 그래도 이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아마도 조금 전 해안경비정은 어선들 때문이 아닌 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운항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서퍼들이 해변에서 멀리 떨어질라 치면 곧바로 다가와 경고를 한다.

철길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철길 위를 걷던 발걸음은 해변의 푹신한 모래 위를 걷는다. 반달처럼 휘어진 해변을 걸어 죽도 공원에 도착했다. 죽도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 불리는 지명이다. 과거에는 섬이라 육지와 떨어져 있었지만 현재는 바다가 메워져 공원으로 변모했다. 오른쪽으로 송정해변이 보이고 왼쪽으로 어선들이 즐비한 송정방파제가 보인다. 해변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몇 km만 더 걸어가면 기장군으로 통한다. 하지만 기찻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죽도공원

 

해가 모습을 감추고 밤이 찾아온 송정해수욕장 서퍼들의 함성도 사라지고 하늘로 치솟는 폭죽 소리만 요란하다. 여건만 된다면 기찻길을 따라 다시 해운대까지 걸어보고 싶다. 낮에 보는 바다도 좋지만 밤바다 또한 매력이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조명이 아름답게 느껴질 때가 바다 위로 뿌려지는 조명들이 수채화를 그릴 때이다. 기차는 떠나고 철길은 버려졌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선로의 녹을 벗겨내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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